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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지나야의시간속노래가전하는가슴한켠의그리움과위안의미까지담다

지나야를 타고 흐르는 시간

저마다의 가슴 안에 남아 있던 여름의 저녁 빛이 공연장의 조명처럼 내려앉을 때, 음악은 말없이 우리를 한 자리에 모은다. 현역가왕 박서진이 무대에 올라선 순간,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지나야’의 떨림은, 마치 오랜 가을의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듯 조용하고도 확실했다. 그가 들려주는 이 곡은 한때의 흥을 끌어올리던 친숙한 이름이었고, 동시에 지금의 신선한 공기를 품고 있었다. 박서진은 장구를 두드리는 신비로운 리듬으로 흥의 문을 열었고, 관객석에서 울려 퍼지는 환호는 그 시절의 불빛을 다시 끌어올리는 힘이 되었다. 50년대의 추억을 아직도 등에 지고 다니는 우리 세대에게, 지나야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지나간 시간의 창문을 열어 두드리는 손길이며, 지나는 칼처럼 아프게도 다가왔다가 다시 웃으며 지나가는 삶의 한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어오는 순간이 있었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 그랬다, 그때의 나도 이 노래를 들으며 사랑을 배우고, 이별의 긴 밤을 견디지 않았던가. 박서진의 ‘지나야’는 그렇게 우리를 과거의 길로 이끌면서도, 오늘의 생동감을 잃지 않았다. 그의 텐션은 밝고 경쾌했고, 청중은 한마음으로 그 흥에 몸을 맡겼다. 현역가왕의 대표곡으로 흥을 뿜어낸 지금의 모습은, 2대 가왕의 자리에 선 자의 책임감과도 닿아 있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며도, 현재의 무대를 소중히 다루는 그의 태도는 우리 세대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지나야”의 의미를 새롭게 쓰게 했다.

여인의 눈물, 서로 다른 목소리의 합창

그다음 무대에는 1대 가왕 전유진과 3대 가왕 홍지윤이 등장해, 클래스를 넘나드는 두 보컬의 합창으로 무대를 채웠다. 그들이 부른 ‘여인의 눈물’은, 서로 다른 길을 걷던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의 떨림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곡이다. 전유진의 금발 변신이 주는 시각적 파격은 신곡 발표의 설렘과 맞물려, 음악적 충격을 더했다. 그러나 음색의 차이가 낳는 긴장은 금방 고요해지며, 서로의 음정을 맞춰가던 두 보이스는 한층 더 깊은 울림으로 흐름을 이끌었다. 그들의 합창은 마치 고향에서 만난 친구처럼 친근했고, 한 편으로는 세월의 파도 앞에서도 여전히 선명한 목소리의 빛을 확인시켜 주었다. 나 역시 오랜만에 들여다본 사진첩에서 잃어버린 시절의 이웃 얼굴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럴 때면 늘 이 노래의 선율이 입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 서로 다른 톤과 음색이 하나의 곡 속에서 하나의 울림으로 합쳐질 때, 가창력의 깊이가 얼마나 큰 보물이 되는가를 새삼 느꼈다. 전유진의 과감한 퍼포먼스는 무대의 색을 바꿨고, 홍지윤의 탄탄한 기교는 그 색을 또렷하게 다듬었다. 두 가왕의 대담한 조합은, 한 시대의 음악이 다른 시대의 감성으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또렷한 증거였다.

현역가왕의 귀환과 시대의 기억

공연장은 한일 교류의 축제로도 보였다. 솔지의 감성을 살린 ‘당돌한 여자’의 에너지와, 일본 가왕 타케나카 유다이가 선보인 ‘투명’과 ‘Love Story’의 선채로도, 서로 다른 나라의 보컬 전통이 한자리에 모여 흘렀다. 솔지는 현장의 숨결을 가볍게 흔들며, 당당한 카리스마로 관객을 관통했고, 박서진은 ‘지나야’의 매끄러운 리듬으로 현장의 열기를 배가시켰다. 일본의 가왕 유다이는 또렷한 발성으로 곡의 분위기를 다층적으로 만든 뒤, 한편의 러브스토리를 던지듯 가창의 여백을 남겼다. 이렇게 양국의 레전드들이 듀엣을 주고받는 모습은, 서로의 노래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자, 시대를 넘나드는 음악의 힘이었다. 이 자리에서 전해지는 문화적 공감은 우리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나 역시 이 모든 풍경 속에서, 젊은 시절 친구들이 서로의 음색을 흉내 내며 놀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나를 만나는 일은 때로 숨이 막힐 만큼 벅차오르지만, 음악은 늘 우리를 어루만져 준다. “지나야”와 같은 곡들이 오늘의 무대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며, 우리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감정의 뿌리를 확인한다. 금발로 파격 변신한 전유진의 무대, 그리고 박서진의 생동감 있는 연주가 어우러져, 한일 가왕전은 과거의 얼굴과 현재의 얼굴이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자리로 변모했다.

마지막 피날레에 남은 우리들의 마음

피날레는 늘 그러하듯, 끝나지 않는 인사 대신에 다시 시작하는 노래로 남겨진다. 박서진이 다시 한 번 ‘지나야’를 들려주며 무대를 매듭지을 때, 관객석의 손하트와 박수는 오래된 친구의 방문을 환영하는 인사처럼 다정하게 흘렀다. 장구의 울림은 무대의 바깥으로까지 울려 퍼지며, 우리 각자의 창문 너머에 놓인 작은 희망의 불빛을 켰다. 이 불빛은 단지 음악에 의해 켜진 것이 아니다. 세대 간의 이해, 나라를 초월한 예술적 존중, 그리고 서로의 고난과 기쁨을 어루만지는 공감의 울림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빛이기도 했다. 나 또한 이 빛을 바라보며, 오래전에 떠올렸던 불빛들—작은 도시에 남겨진 친구의 미소, 부모님의 기대와 부담, 처음으로 트로트를 들으며 떨던 마음—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 모든 것이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타올랐다. 지나간 노래들은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는 애정을 품고 우리를 찾아온다. 그리고 오늘의 무대는 그 애정을 더 깊고 넓게 확장시켰다. 박서진의 ‘지나야’가 다시 들려왔을 때, 나의 마음은 옛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가 함께 흐르는 강물처럼 흘렀다. 이 강물은 멈추지 않으리라, 우리 세대의 노래를 품고 다음 세대에게도 흐를 테니까. 그래서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다가오는 순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속으로 말했다. 또 기다리자, 또 들으러 가자. 지나야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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