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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빈 무명의 골목에서 피운 트로트의 기억과 공동체의 숨결

그 시절의 무대는, 도시의 거리처럼 길고 좁았다. 낮에는 헤어드라이어의 소음이 울리고, 밤이 다가오면 조명의 냄새가 스크린 뒤로 흘러나오곤 했다. 그때의 트로트는 대중과 가수의 호흡이었다. 한 음이 흘러나가면 관객의 마음도 함께 흔들리었고,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스튜디오의 의자들이 조용히 떠받들었다. 나는 그때의 음악인들을 떠올리면 늘 한 가지 노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무대 위에서 눈을 반쯤 감고 노래의 길을 따라가던 모습. 그리고 그 옆에서 조용히 박수를 쳐주던, 이름은 알면서도 늘 잊히곤 하는 수십 명의 동료들.

그 시절의 가수들은 하나의 공동체였다. 차현덕의 부드러운 음색이 흘러나오면 관객은 마치 오래된 다락방에 걸려 있던 사진을 하나씩 꺼내 보는 듯했다. 전선숙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와 우리를 옛 도시의 골목으로 이끌었다. 성기일과 박종만은 서로 다른 색의 음을 덧대어 대중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성한경의 강단 있는 가창은 방송실의 파수꾼 같았고, 김미화의 맑고 술술 풀리는 음성은 라디오의 커튼 아래 흘러드는 첫 빛처럼 산뜻했다. 김정희의 깊은 음향은 스튜디오 벽을 한 층 더 따뜻하게 감싸 안았고, 22회로 함께 묶인 홍기형의 바람도 그때의 노래를 조금 더 큰 울림으로 남겼다. 이들 각각의 이름은 지금도 내 마음의 작은 표지처럼 남아 있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 돌이켜 보면, 우리는 모두 한 편의 드라마를 함께 썼던 배우들이었다.

무대의 뒤편은 생각보다 거짓말 같지 않았다. 조명실의 작은 창문 너머로 흘러나오던 공기의 냄새, 카세트가 돌아가며 남겼던 짧은 정적, 그리고 곡 사이의 짧은 침묵. 그 침묵은 오히려 노래의 존재를 더 크게 만들어 주었다. 이경의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은 무대의 열기를 말해 주었고, 손명희의 손목에 감긴 검은 팔찌는 그날의 시간을 상기시켰다. 이종성, 이종문, 한승훈, 최도성, 최병숙, 조의정 같은 이름들이 차례로 등장할 때마다 무대는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으로 변했고, 관객은 그 전시장에 모인 가족처럼 서로를 알아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로의 눈물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노랫말은 비단 음악이 아니라, 가족의 대화였고, 이웃의 안부였다.

그 시절의 음악인들은 서로의 삶을 노래의 리듬으로 엮었다. 전선숙의 음색은 도시의 새벽을 달래 주었고, 권영철의 톤은 바닷가의 모래를 떠오르게 했다. 설승섭의 음은 group의 단단한 뼈대를 만들어 주었고, 이규호의 여운은 긴 여정을 따라가며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손명희의 앵글은 늘 관객의 눈높이에 있었고, 이종성의 음성은 오래된 가정의 밥상 같은 안전함을 주었다. 최도성과 최병숙은 서로 다른 감정의 색으로 같은 노래를 채색했고, 라혜복과 민숙자는 무대 뒤의 그림자를 환하게 비추는 손길이었다. 이들의 이름이 하나의 목록으로 남아 있을 때마다, 나는 그 목록이 곧 한 시대의 지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물으면, 나는 속으로 답한다. 네, 그 시절을 우리는 함께 걸었습니다.

가사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랑은 바람이고, 이별은 오래된 골목의 종소리이며, 기쁨은 창밖으로 흘러드는 햇살이었다. 그 핵심 구절을 떠올려 보면, 노래의 무게가 더 또렷해진다. 가사는 결국 사람의 마음에 남는 작은 언어들이다. 그래서 나는 가사를 떠올리며, 당시의 관객들이 어떤 눈빛으로 음악을 들었는지 상상한다. 한 소절이 끝날 때, 마이크를 잡은 손의 떨림이 화면 밖의 가족들을 얼마나 기다리게 했는지. 또 한 구절이 흐름을 바꿀 때, 스튜디오 바닥의 낡은 나무가 어떤 속도로 흔들렸는지. 그 모든 숨결이 모여 당시의 시대를 만든다. 우리는 서로의 삶의 일부를 노래 속에서 발견했고, 각자의 이별이 곡의 한 구절이 되었으며, 각자의 기쁨이 곡의 리듬에 맞춰 재생되곤 했다.

나의 기록은 말한다. 이 시기의 가수들은 단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라디오의 문을 열고, TV의 화면을 밝히고, 작은 동네의 냄새를 도시의 큰 공기에 담아 옮겨놓은 초대장이었다. 그리고 그 초대장은 언제나처럼,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라는 말이 주는 안도. 그 말을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우리는 다시 한 번 노래를 돌려 듣고, 가수들이 남긴 작은 흔적들을 따라가본다. 이름은 다르게 불렸고, 역할은 다르게 해석되었겠지만, 그들의 음악이 남긴 것은 분명했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손길, 서로의 기쁨을 함께 노래하는 현장의 열기, 그리고 배우처럼 살아내야 했던 가수의 삶이 남긴 깊은 인간미.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속삭인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억은, 한 시대의 노래이자 한 사람의 삶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음악은 결국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차현덕의 부드러운 음을 들으며, 임호순의 숨소리를 따라가던 사람들, 한순일의 담담한 톤에 안심하던 이들, 김석동의 강한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던 아이들, 권영철의 냉정한 정확성 아래 피어나던 감정들. 그 모든 이름들이 하나의 큰 합창으로 떠오를 때, 비로소 우리는 어깨를 서로 기대고, 눈물은 서로의 어깨에 흘러 내릴 수 있었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 그때의 노래가 오늘의 우리를 이끌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 노래들을 기억의 문 앞에 두고, 조용히 다가가 보고,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희망의 박자를 잃지 않는 한, 이 음악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의 우리도, 지금의 우리도, 같은 바람을 품고 있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숨을 나누며, 우리는 오늘도 또 다른 미래의 노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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