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트로트는, 지금의 가요가 아닌 이야기의 궤를 따라 흘러가던 물길이었다. 도시가 한두 해 늙은 데 비해, 마을의 조그마한 무대는 늘 새로웠고, 그 안에서 피어오르던 멜로디는 마을 사람들의 삶을 한 숟가락씩 떠먹여 주듯 천천히 깊어갔다. 기억은 늘 잔 잔이 된 빛으로 남아 있다. 가야의 강물처럼 반짝이는 조명 아래, 금줄 같은 전기의 숨결이 노래의 숨을 돕고, 고향 김해의 골목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살아 숨 쉬었다. 그때의 늦은 밤, 친구들의 악수를 맡아 주던 촛불 같은 무대 조명 아래에서, 나 역시 한참을 울컥 울컥 눈물을 삼키곤 했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한 잔의 술처럼 나누던 그 분위기, 잔잔한 흥에서 피어난 연대의 힘이 오늘의 우리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제6회 가야시민가요제의 무대가 열리던 그 날, 김해가야테마파크의 가야왕궁 태극전은 작은 도시의 크나큰 꿈을 모아 올려 놓은 연단 같았다. 개장 11주년을 기념하는 이 자리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시작되었다가, 한 편의 서정시로 마무리되는 흐름이었다. 심사위원의 눈빛은 냉정하지만, 관객의 박수는 따뜻했다. 그리고 그 날의 금상은 영탁의 막걸리 한잔을 부른 박현길 씨에게 돌아갔다. 무대 위의 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랜 기다림의 종을 울리는 벨소리 같았고, 가락은 마을 뒷골목에서도 들려오는 어머니의 노래처럼 포근했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의 거친 바람을 지나온 듯한 거친 숨소리를 남겼다. “막걸리 한잔”이라는 핵심 구절이, 한 잔의 술이 담아내는 고단한 시간과 그 위로 흘러내리는 위로를 작게 그리고 또렷하게 건네었다. 그 구절은,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의자에 올려놓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처럼 다가왔다. 그 한 문장 속에, 젊은이의 꿈과 노년의 아쉬움이 함께 놓여 있었다.
가야의 밤은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녹였다
은상은 초등학교 교사 김지훈 씨가 조째즈의 모르시나요를 부르며 얻었다. 그의 노래 선택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선생님의 책임감 사이에서 흔들리던 지난 학기를 떠올리게 했다. 교실 칠판 위에 남은 흰 분필 자국처럼,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아이들의 마음을 두드리며, 때로는 무대의 긴장감을 흘려 보내 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동상은 고향 김해에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을 품고 김건모의 서울의 … 를 택한 성진호 씨의 무대에 주어졌다. 완성되지 않은 도시의 이미지는 그를 통해 작게나마 다가왔고, 가사를 따라 흘러가는 그의 눈빛은 젊은 세대의 가능성뿐 아니라, 꿈을 품은 이들이 중년의 문턱에서 여전히 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엮여, 관객의 귀를 지나 마음의 창으로 스며들었다. 나도 그때의 박수 소리와 함께, “그때의 우리도 저 자리에서 꿈을 그렸지”라는 생각을 조용히 되새겼다.
막걸리 한잔이 남긴 시간의 자국
영탁의 대표곡을 부른 무대도 있었고, 그 곡은 이 자리에 대한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 주었다. 전국 투어의 흐름 속에서 영탁은 시간 여행을 콘셉트로 삼아, 과거의 노래들을 현재의 무대 위에 재배치했다. “막걸리 한잔”이라는 단순하고도 강렬한 구절은, 이 도시의 밤에 더 깊이 스며들었다. 시간 여행의 무대는, 과거의 노래들이 지금의 청자들에게 닿게 하는 매개체였다. 강진의 원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곡은, 영탁의 해석으로 한층 다채로운 색깔을 띄었고, 그 색깔 속에서 관객은 자신이 지나온 길 위에 놓인 작은 등불들을 다시 발견했다. 가사의 핵심에 담긴 애상과 위로는, 세대 간의 다리를 놓아 주었다. “나는 그 시절에 웃었고, 또 울었지.” 이런 자잘한 문장들이 아니라도, 노래의 리듬과 울림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를 조용히 안아 주도록 만들었다.
그때의 노래가 오늘의 우리를 걷게 한다
이야기의 끝은 아직 멀다. 그러나 오늘의 음악은 어제의 노래를 품고 자라났다. 가야시민가요제의 금상 수상 소식은 단순한 상의 수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도시가, 한 가족이, 한 학교를 둔 작은 사회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꿈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박현길 씨의 금상은, 막걸리 한잔의 무게를 새롭게 정의해 주었다. 한 잔의 술이 아니라, 수십 년의 삶과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음표였음을, 무대가 말해 주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라는 고백을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고백은, 서로를 위로하는 속삭임으로 자리했고, 바람은 여전히 잔에 남은 달빛처럼 부드럽게 흔들렸다.
영탁의 시간 여행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의 콘서트는 흔들림 없는 리듬으로 관객의 발걸음을 잡아끌고, 각 시대의 이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트로트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이며, 세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다리라는 것을. 그 다리는 김해의 밤에서 시작되어 전국의 도시를 지나, 다시 우리를 서로의 품으로 이끌었다. 나도 그 시절의 한 조각을 다시 꺼내볼 왜곡되지 않는 빛을 찾아, 오늘의 가슴에 조용히 얹어 본다. 우리가 흘려보낸 눈물과 웃음은, 막걸리 한잔의 잔 속에서 서로 서로를 안아 주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잔은 아직 비워지지 않았다. 앞으로의 길에서도, 이 노래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리라는 믿음이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의 무대가 남긴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음악은 시대의 살림살이다. 가끔은 고향의 골목 냄새를, 때로는 도시의 냄새를, 또다시 누구의 이름도 잊히지 않는 한 노래의 냄새를 우리 곁에 남겨 둔다. 금상과 은상, 동상의 판정은 지나간 날의 기록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그날 무대 위에 선 사람들의 눈빛이었고, 그 눈빛이 남긴 공감의 여정이었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 그리고 아직도 이 시절의 노래는 우리를 울리고, 우리를 위로하며, 우리를 앞으로 이끌어 간다. 그때의 무대가 오늘의 길목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이유도, 그 한 잔의 막걸리가 주는 따스함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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