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전시는, 박서진이 5개월의 손길로 빚어낸 ‘본태 모란도’가 주인공인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미술과 음악이 서로의 속도를 맞춰 걷는 자리에서, 관람객들은 하나의 마음을 나눴다. 트로트 가수의 삶을 오랜 시간 응시해 온 이들에겐, 사소한 만남 하나가 오래된 노래의 구절처럼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법이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서정의 떨림은 늘 시대의 냄새를 품고 다가오고, 그 냄새는 어쩌면 우리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 하고 속삭이는 듯했다.
빛과 꽃으로 열리는 작은 축제 같은 현장에는,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들이 있었다. 개그우먼 황혜선이 꽃다발을 들고 등장하자 공간의 분위기는 한층 다정해졌고, 박서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황혜선의 등장은 단순한 게스트의 방문이 아니었다. 서로를 응원하는 동료의 따뜻한 흔적이자, 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서로의 작은 성공을 축복하는 장면이었다. 아버지는 밝은 목소리로 “미래의 며느리를 봐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고, 어머니의 눈빛은조용하게 그 자리에 머물렀다. 가정에서 시작된 응원의 울림은 전시장의 벽에 걸린 그림처럼 투명하게 다가왔다.
첫째의 문턱, 가족의 축복
전시장의 길쭉한 복도는 마치 오래된 트로트의 도입부처럼 느리게 시작되었다. 작품 앞에서 서진은 몇 번이나 손끝으로 붓의 흔적을 더듬었다고 한다. 중간의 한 컷, 모란의 꽃잎이 모여드는 모습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그 옆에서 가족들은 서로의 체온으로 분위기를 다독였다. 박서진의 아버지는 전시장의 한켠에서 가족 사진을 바라보며, 조용한 자부심을 털어놓았다. 그가 남긴 말은 간단했다. “오늘 너무 좋다.” 어머니의 미소도 공손했고, 그 미소는 멀리서 본인들의 그림자처럼 자리를 비추었다. 이 작은 축복의 시간은, 노년의 세대가 음악과 미술의 교차점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런 날이 있었지.”라는 속삭임이 마음 한구석에서 터져 나오는 듯했다. 나와 같은 50대 중후반 observers도, 그 말의 울림을 알고 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겪었던 고단함과, 그것을 지나 현재의 조용한 기쁨으로 바꿔 놓은 시간들. 박서진의 작업이 단지 그림이 아니라, 가족의 시간과 세대의 기억을 한 겹씩 벗겨 보여 주는 창이 되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다시 느꼈다.
둘째의 불빛, 동료와의 따뜻한 인연
현장에는 이요원과 박현호·은가은 부부, 재하, 그리고 황혜선을 비롯한 여러 지인들이 함께 모였다. 관람객의 발걸음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듯 흩어지던 분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축하하는 말들이 서로를 스치는 소리가 있었다. “5개월 동안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말들, 그리고 “본태 모란도”가 전하는 고요한 기백. 이때 등장한 황혜선은 꽃다발과 함께 전시장에 들어섰고, 박서진은 “누가 꽃인지 모르겠다”고 재치 있게 화답해 현장을 환하게 밝혔다. 이 한 마디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예술인들이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의 언어가 같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 시대의 음악인들은 종종 무대 위의 화려함 뒤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 날의 대화 속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박서진의 목소리와 무대 뒤에서 들려오는 동료들의 박수 소리는, 50대의 귀에 더 깊게 다가오는 정서였다. 나 역시 떠올려 본다. 나의 젊은 시절, 음악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었는지. 그때의 우리는 누구의 응원을 들었고, 어떤 꿈을 마음속에 새겼는지. 그 공감의 파동은, 오늘의 조용한 음악과 예술의 만남에서 다시 피어났다.
셋째의 숨, 민화와 음악의 만남
전시를 마친 뒤의 흐름은 늘 그렇듯 조용했다. 다만 오늘의 이 흐름은 그냥 지나치는 시간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의 결과물이었다. 박서진은 다섯 달에 걸쳐 완성한 민화 ‘본태 모란도’를 통해, 팬들과 가족, 동료들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란은 한국의 전통 회화 속에서도 강인함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꽃으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박서진의 그림 속 모란은 상처를 감싸는 포용의 색채와, 삶의 기운을 압축해 내는 선들이 어울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것은 박서진의 음악과도 닮아 있다. 트로트는 늘 현실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는 노래다. 그 고단함은 가족의 온기, 친구의 격려, 그리고 무대 밖의 작은 만남에서 조금씩 녹아들어, 더 넓은 호흡으로 확장된다. 현장에 모인 이요원과 재하, 은가은 부부의 응원은, 음악인이 서로의 길을 존중하는 공동체의 힘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황혜선의 등장은, 서로 다른 예술이 한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전시의 분위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고, 그 드라마의 배우들은 어쩌면 우리가 오래 기억해 온 얼굴들이었다. “오늘의 이 기분은, 과거의 나를 위로하는 오늘의 음악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의 시절을 다시 불러온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
넷째의 기억, 세대의 공감으로 흐르는 노래
전시장을 나서며, 벽에 남은 모란의 자태가 차갑지만 따뜻한 바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느꼈다. 예술가의 삶은 늘 그러하다. 한 편의 그림이 한 시대의 감성을 닮아가고, 한 편의 노래가 또 다른 세대의 기억을 이끌어 간다. 50~70대의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작은 음악의 기억을 꺼내본다. “그때 그 시절, 우리도 모란처럼 피어 있던가.” 이 말은 우리 모두의 기억을 포근하게 안아 주는 말이다. 전시와 공연은 결국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이며, 그 연결고리는 가족의 축복과 동료의 응원에서 더 견고해진다. 오늘의 박서진과 황혜선의 만남은, 멀리 떨어진 시간의 활주로를 조금 더 넓혀 주었고,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음악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이 고향은 언제나 따뜻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가,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라고 말하는 순간—그때의 물결이 다시 일어나고, 지금 이 자리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살아 있는 이유다.
그리하여 전시는 끝을 맺었고, 현장의 모든 사람은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며 한 자리에 남은 흔적들을 조심스레 닦아 냈다. 박서진의 그림과 음악은 서로를 닮아 있다. 그림은 말없이 다가와 마음을 어루만지고, 음악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시간을 말로 바꿔 작은 기쁨을 남긴다. 황혜선의 방문과 가족들의 응원은, 그날의 드라마를 더 진하게 만들었다. 앞으로의 길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세대가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 무엇이든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트로트의 힘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바로 오늘의 우리의 이야기이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고, 지금의 이 시절이 누군가의 하모니가 되기를 바라본다. 이 따뜻한 기억의 물결은 앞으로도 우리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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